생활 속 숨은 과학

바나나는 왜 사과 옆에 두면 빨리 익을까? 에틸렌 가스에 숨겨진 과학

GoodnoteTip 2026. 10. 11. 06:00

 바나나는 왜 사과 옆에 두면 빨리 익을까? 에틸렌 가스에 숨겨진 과학

마트에서 초록빛이 도는 바나나를 사 왔는데 생각보다 익는 속도가 느릴 때가 있습니다. 당장 먹고 싶은데 과육은 단단하고 단맛도 부족합니다.

이럴 때 잘 익은 사과와 함께 두면 바나나가 빨리 익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사과 한 개가 바나나의 숙성 속도를 바꿀 수 있을까요?

사실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 비밀은 사과가 내보내는 에틸렌(Ethylene)이라는 기체에 있습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면 바나나가 노랗고 달아지는 이유뿐 아니라, 덜 익은 바나나를 조금 더 빨리 익히는 방법까지 알 수 있습니다.

 

사과가 바나나에게 보내는 보이지 않는 신호

사과가 바나나에게 보내는 보이지 않는 신호

사과와 바나나를 나란히 놓으면 서로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을 것 같지만, 과일은 수확된 뒤에도 호흡과 여러 생리 활동을 계속합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과일은 숙성과 관련된 기체를 만들어 주변 공기 중으로 방출합니다.

그 기체가 바로 에틸렌(Ethylene, C₂H₄)입니다.

에틸렌은 식물이 자연적으로 만들어 내는 물질로, 과일의 숙성과 식물의 성장·노화 등에 관여하는 식물 호르몬입니다.

사람의 몸에서 호르몬이 여러 기능을 조절하듯 식물도 호르몬을 이용해 성장과 변화를 조절합니다.

특히 에틸렌은 과일이 익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틸렌의 흥미로운 특징은 기체라는 점입니다. 사과에서 나온 에틸렌은 공기 중으로 퍼질 수 있기 때문에 바나나와 직접 닿지 않아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바나나의 세포는 에틸렌이라는 신호를 감지하고 숙성과 관련된 변화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사과가 바나나에게 '이제 익을 시간이야'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사과 옆에 두었다고 모든 바나나가 똑같이 빨리 익는 것은 아닙니다. 사과와 바나나가 얼마나 익었는지, 주변 온도와 통풍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바나나는 왜 익을수록 노랗고 달아질까요?

바나나가 익으면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납니다.

껍질은 초록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고, 단맛은 강해지며, 과육은 부드러워집니다.

이 변화들은 바나나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생화학적 반응과 관련이 있습니다.

초록색 껍질이 노랗게 변하는 이유

덜 익은 바나나의 껍질이 초록색인 것은 엽록소(Chlorophyll)라는 색소 때문입니다.

엽록소는 식물의 잎을 초록색으로 보이게 하는 성분이기도 합니다.

바나나가 숙성되면 엽록소가 점차 분해됩니다. 초록색이 줄어들면서 껍질에 존재하는 노란색 계열의 색소가 상대적으로 뚜렷하게 보입니다.

이때 관련되는 색소 중 하나가 카로티노이드(Carotenoids)입니다.

따라서 바나나가 노랗게 변하는 것은 외부에서 색이 입혀지는 것이 아니라 껍질 내부의 색소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단단하고 밍밍했던 바나나가 달아지는 이유

덜 익은 바나나에는 녹말(Starch)이 비교적 많이 들어 있습니다.

녹말은 밥이나 감자에도 들어 있는 탄수화물로, 식물이 에너지를 저장하는 형태 중 하나입니다.

바나나가 익으면 여러 효소의 작용으로 녹말이 분해되고, 당의 비율이 높아집니다.

쉽게 말해 덜 익었을 때 저장되어 있던 녹말이 숙성 과정에서 단맛을 내는 당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노랗게 익은 바나나는 초록색 바나나보다 대체로 더 달게 느껴집니다.

과육이 부드러워지는 것도 숙성 과정의 일부입니다.

바나나의 세포를 단단하게 유지하던 구조가 변화하면서 과육이 점차 부드러워집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세포벽의 구성 성분인 펙틴(Pectin) 등도 관련됩니다.

결국 바나나가 익는다는 것은 껍질 색만 바뀌는 현상이 아닙니다.

색소가 변하고, 녹말이 당으로 전환되며, 과육의 조직까지 달라지는 과정입니다.

그렇다면 딸기도 사과 옆에 두면 더 달아질까요?

여기서 또 하나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사과에서 나오는 에틸렌이 바나나를 빨리 익게 한다면 딸기나 포도도 사과 옆에 두면 더 달아질까요?

딸기와 포도는 바나나처럼 수확 후 후숙하면서 단맛이 크게 증가하는 과일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과일마다 숙성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과학에서는 과일의 숙성 과정에서 나타나는 호흡 특성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호흡급등형 과일(Climacteric Fruit)이고, 다른 하나는 비호흡급등형 과일(Non-climacteric Fruit)입니다.

호흡급등형 과일은 숙성이 진행되는 특정 시기에 호흡 속도가 뚜렷하게 증가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에틸렌도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반면 비호흡급등형 과일은 이러한 전형적인 호흡 급등이 나타나지 않으며, 수확 후 숙성 양상도 다릅니다.

호흡급등형 과일과 비호흡급등형 과일 비교

구분 호흡급등형 과일 비호흡급등형 과일
대표 과일 바나나, 사과, 배, 키위, 아보카도, 토마토 딸기, 포도, 오렌지, 레몬, 체리
수확 후 변화 후숙이 뚜렷하게 진행될 수 있음 바나나와 같은 후숙은 제한적
에틸렌의 역할 숙성을 조절하는 중요한 신호 반응할 수 있지만 숙성 방식이 다름
호흡 특징 숙성기에 호흡 속도가 증가 전형적인 호흡 급등이 나타나지 않음
단맛 변화 일부 과일은 녹말이 당으로 전환 보관만으로 단맛이 크게 늘지 않는 경우가 많음
보관할 때 숙성 단계에 맞춰 관리 수확 당시 품질과 신선도 유지가 중요

 

※ 일반적인 숙성 특성을 비교한 표입니다. 품종과 저장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비호흡급등형 과일도 에틸렌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덜 익은 바나나는 수확 후에도 노랗게 변하고 단맛이 강해질 수 있습니다.

반면 딸기는 수확 후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나 향, 질감이 변할 수 있지만 바나나처럼 녹말이 대량으로 당으로 전환되어 단맛이 크게 증가하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딸기를 사과 옆에 둔다고 해서 더 달콤한 딸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모든 과일이 시간이 지나면 더 맛있게 익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과일을 구입하고 보관할 때도 도움이 됩니다.

바나나를 빨리 익히고 싶다면 사과와 종이봉투를 활용해 보세요

에틸렌의 원리를 알았다면 실제 생활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덜 익은 바나나를 조금 더 빨리 먹고 싶을 때는 잘 익은 사과와 함께 종이봉투에 넣어두는 방법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과에서 방출된 에틸렌이 봉투 안에 상대적으로 머무르면서 바나나의 숙성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나나 빨리 익히는 방법

  1. 초록빛이 남아 있는 바나나와 잘 익은 사과 한 개를 준비합니다.
  2. 두 과일을 깨끗하고 마른 종이봉투에 함께 넣습니다.
  3. 봉투 입구를 가볍게 접고 직사광선이 닿지 않는 실온에 둡니다.
  4. 하루에 한 번 바나나의 껍질 색과 단단함을 확인합니다.
  5. 원하는 정도로 익으면 봉투에서 꺼내 섭취하거나 보관합니다.

여기서 종이봉투를 사용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종이봉투는 에틸렌이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어느 정도 줄이면서도 비닐봉지보다 습기가 빠져나가기 쉬운 편입니다.

반대로 비닐봉지를 완전히 밀봉하면 내부에 습기가 차고 물방울이 맺힐 수 있습니다.

과일 표면이 오래 젖어 있으면 품질이 떨어지거나 부패 위험이 커질 수 있으므로 무조건 밀봉하는 것은 피하는 편이 좋습니다.

다만 종이봉투에 넣는다고 해서 반드시 하루 만에 바나나가 익는 것은 아닙니다. 바나나의 초기 숙성 상태와 실내 온도, 사과의 숙성 정도에 따라 차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사과가 없다면 잘 익은 바나나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사과가 없다면 잘 익은 바나나를 덜 익은 바나나와 함께 두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바나나 역시 숙성 과정에서 에틸렌을 방출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너무 무르거나 곰팡이가 생긴 과일은 함께 보관하지 않아야 합니다.

바나나가 너무 빨리 익는 것을 막으려면?

바나나를 빨리 익히는 방법을 알았다면 반대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숙성을 서두르고 싶지 않을 때는 사과나 이미 잘 익은 과일과 떨어뜨려 놓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바나나는 온도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덜 익은 바나나를 지나치게 차가운 곳에 두면 정상적인 숙성이 방해받을 수 있으므로 보관 온도에도 주의해야 합니다.

충분히 익은 뒤에는 냉장 보관을 고려할 수 있지만 껍질이 검게 변할 수 있습니다. 껍질 색만으로 과육이 상했다고 판단하기보다는 실제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나나를 오래 보관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별도의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관련 글: 바나나 오래 보관하는 법, 갈변을 늦추고 신선하게 먹는 보관 방법

사과와 바나나를 함께 두는 작은 행동에도 식물 호르몬과 과일 숙성이라는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사과에서 나온 눈에 보이지 않는 에틸렌이 바나나의 숙성에 영향을 주고, 그 과정에서 껍질의 색과 단맛, 식감이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다음에 덜 익은 바나나를 샀다면 사과와 종이봉투를 활용해 보세요.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과일의 숙성 과정을 직접 관찰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바나나를 오래 신선하게 보관하고 싶다면?

바나나를 빨리 익히는 방법만큼 중요한 것이 적절한 시기에 숙성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덜 익은 바나나와 충분히 익은 바나나는 보관 방법이 다릅니다. 냉장 보관이 적절한 시점부터 냉동 보관 방법, 껍질에 검은 반점이 생겼을 때 확인할 사항까지 알아두면 바나나를 더 알뜰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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